자유게시판

한국의 위대한 선교 운동

steveyoung 2018.07.04 11:34 조회 수 : 303

 

South Korea’s Great Missionary Movement—God’s Sovereignty, Our Obedience

한국의 위대한 선교 운동 - 하나님의 주권, 우리의 순종

 

The message of the gospel first reached the Korean people in 1885 through the work of foreign missionaries.

Less than one hundred years later, twenty-four missionaries were officially sent out by the Korean churches in

1974. Their number grew exponentially, and forty years after Korea sent out its first missionaries, 27,436

Korean missionaries from various denominations were serving in 170 countries.

 

복음의 메시지는 1885 년 외국 선교사들의 사역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100 년이 채 안되어

1974 년 한국 교회는 24 명의 선교사를 공식적으로 파견했습니다. 이후 40 년 동안 선교사 파송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 났으며 현재 여러 교단으로부터170 개국에 27,436 명의 한국 선교사가 파송되었습니다

 

This growth has caused Christians worldwide to marvel at how Korea so quickly went from a country void

of the gospel to one of the biggest exporters of it. Although my country’s missions practice hasn’t been perfect,

I think certain factors, by God’s grace, have helped Korean churches send so well.

 

이런 성장은 전세계 기독교계에 불가사의한 것으로 복음을 부정하던 국가가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거물 국가로

신속하게 변화한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선교의 실행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한국 교회가 잘 감당하였다고 생각합니다.

 

The Church Persevered under Persecution

박해를 당한 한국교회

 

Korea was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until 1945, and Christian practice had been suppressed.

Korean Baptist churches, in particular, were forcibly closed and their properties confiscated in 1944

because they refused to participate in Japanese shrine worship. This oppression diminished their numbers,

but many remained faithful in the face of persecution.

 

한국은 1945년까지 일제 식민 통치하에 있었고 한국기독교는 억압되었습니다. 특히 한국 침례 교회는

일본 신사 참배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1944 년에 강제 폐쇄되었고 그 들의 재산이 몰수되었습니다.

이 억압은 기독교인의 전체적인 숫자를 줄이는 역할을 하였지만 박해는 더 충성된 기독교인을 양성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By the time Korea was liberated from Japanese colonial rule in 1945, there were around 350,000 Christians in Korea.

The Christians who remained set out to share their faith and partnered with rooted Christian organizations,

namely 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 As a result, the church grew explosively, reaching 1.2 million

Christians in 1965 and 10 million in 1985.

 

한국이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 된 1945년에는 한국에는 약 35만명의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뿌리깊은

기독교 단체, 남침례 컨벤션과 파트너가 되어 그들의 신앙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 결과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1965 년에는 120만명의 기독교인이 되었고 1985년에는 천 만명의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The Prioritization of Prayer and Obedience

기도와 순종의 우선순위 결정 

 

There is a Korean church tradition to go to the church at 5 a.m. to worship and pray before going to

work. And it’s through those dawn prayers that God has called many Koreans into missionary service—

a call which they often obey immediately.

 

한국교회는 오전 5시에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일터로 나가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새벽기도를 통해 많은 한국인들을 선교사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 그들은 종종 즉시 순종하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Koreans are passionate people. If God leads, even if it seems irrational, they are willing to go without even

knowing exactly where to go, as Abraham did. Korean missionaries believe God will take care of them,

for it is he who has called and sent them.

 

한국인들은 열정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경우, 비록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정확히도 모른 채 아브라함처럼 기꺼이 나아갑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라고

믿음만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보냅니다.

 

The Ban on Overseas Travel Was Lifted

해외여행금지령 해제

 

After successfully hosting the 1988 Seoul Olympics, the Korean government allowed Koreans to travel overseas freely.

As long as they had no criminal record, any Korean could get a passport and go abroad at will. This became a landmark

turning point, and from this time on, Korean missionaries expanded their engagement throughout the world.

 

한국정부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한국인의 해외 여행을 허용했습니다. 범죄 기록이 없는 한 모든 한국인은 여권을

발급 받아 자유의지로 해외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 후 한국 선교사들은 전 세계에 걸쳐

그들의 참여를 확대하였습니다.

 

God Opened Closed Doors of the Mission Field

선교지의 문을 여신 하나님

 

Just as the Korean mission force was ramping up its efforts, God opened two mission fields to receive these

ready missionaries. When Gorbachev declared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in 1990, the door for missionary

work opened wide to the countries in Central Asia that had become independent from the Soviet Union.

 

한국인의 선교 열정과 노력들이 모이자,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선교지 두 곳을 열었습니다.

고르바쵸프가 1990 년 소련 해산을 선포하자 선교 활동의 문이 소련과 독립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개방되었습니다.

 

In God’s providence, there were already five hundred thousand ethnic Koreans who had been taken to various countries

in Central Asia by Stalin in 1937. They made a good contact point for missionaries. These third-generation Ethnic-Koreans

were the people prepared by God through whom Korean missionaries could enjoy the revival of missionary work in the

Islamic countries in Central Asia.

 

하느님의 섭리 속에는 1937 년에 스탈린에 의해 중앙 아시아의 여러 나라로 끌려간 50만명의 고려인들이 이미 있었고 한국 선교사들에게

그들이 좋은 접촉 점이었습니다. 이 소수민족 3세들은 한국 선교사들이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에서 선교사업의 부흥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Koreans are passionate people. If God leads, even if it seems irrational, they are willing to go without even knowing

  exactly where to go.”

 

 "한국인은 열정적인 사람들입니다.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경우, 어디를 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기꺼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

 

Two years later, Korea and China established diplomatic ties. But similar to the case in Central Asia, when Korean

missionaries entered China, there were already 2.7 million ethnic Koreans ready to hear the gospel in the Korean

language. Now we can see that God had been preparing the field long before Korean Christians felt called to go.

 

2 년 후 한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중앙 아시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 갔을 때

이미 270 만 명의 조선족이 한국어로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부름을 받아 선교지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Churches Emphasize Short-Term Overseas Service

한국교회의 강조된 단기 해외봉사

 

Every year, Korean churches use the summer holiday season to take their congregations out of the country for vision trips,

prayer walking, and short-term service abroad. Young people who come back from these trips often commit to missionary

service, and the church members begin to catch a vision for taking the gospel to the world.

 

한국교회는 매년 여름휴가철에 비전트립, 기도회, 단기봉사의 모임을 해외에서 갖습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은 종종 선교

사업에 전념하며 또한 교인들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펼치기를 시작합니다.

 

Churches have taken initiative and encouraged their congregations to use vacation time not for personal pleasure,

but for overseas mission service that is church centered and family oriented.

 

교회는 여름휴가를 개인의 유희를 위해 사용토록 하지않고 교회를 중심으로 한 가족 중심의 해외 선교 사업을 위해 휴가를

사용하도록 발제하고 그들을 격려하여 왔습니다.

 

Ministers On the Move

동원되는 목사들  

 

At one time, 50,000 churches had been planted in Korea with the country’s population hovering around 50 million.

(For comparison, 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 has just over 47,000 churches in the US, which has a population of 373 million.)

In addition, theological seminaries were producing 8,000 graduates each year.

 

한 때 50,000개 교회가 한국에 세워졌으며 인구는 5 천만 명에 달했습니다.

(비교를 위해, 남침례교는 미국에서만 47,000 개 이상의 교회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는 3 7,300 만 명입니다.)

또한 신학교는 매년 8,000 명의 신학생을 배출했습니다.

 

There was a belief that the church had saturated the population. Eventually, job opportunities for ministers became limited.

Naturally, it led many ministers to consider going abroad to preach the gospel to unengaged, unreached peoples

rather than working in Korea. This served as momentum for more missionaries to go.

 

이렇게 교회가 더 많이 세워질 것이라는 믿음은 결국, 목사들이 양산되고 목회의 기회는 제한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많은 목사들로 하여금 한국에서 사역하기보다는 미전도 종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기를 고려하게 되었고 이것은

더 많은 선교사들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Sending Churches Own the Task

교회의 자체적 파송

 

A Korean proverb says, “A tiger dies and leaves his coat. A man dies and leaves his name.”

This mentality is also applied in the local church. Some churches think if a church is healthy and strong,

it has to send its own missionaries to the field so as to leave a missions mark on the world.

Therefore, many missionaries have been sent, almost like a competition, by Korean churches.

 

한국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남자는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런 정신은 지역 교회에 적용되었고

어떤 교회는 교회가 강건하다면 자체적으로 선교사를 선교지에 파송하여야 하고 세계에 선교사역의 표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God has used Korea’s story of overcoming various hardships—severe poverty, lack of natural resources,

dictatorship, civil war, national bankruptcy—to spur missions activity among Christians worldwide.”

 

 

"하나님께서는 심각한 빈곤, 천연자원 부족, 독재권력, 내전, 국가파산 등 다양한 한국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들을

선교활동에 박차를 가해 나아가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Churches that have sent missionaries take pride in their sending, while churches that have not been able to send

are perhaps ashamed that they’ve not been able to afford to send anyone. Furthermore, the sending church and the

missionary have strong relational ties. Whenever the missionary is in need of help, it is the sending church that

actively takes responsibility for the need rather than a sending organization.

 

 선교사를 파송 한 교회는 자부심이 있었고 여력이 부족하여 선교사를 파송 할 수 없었던 교회는 부끄러워하였다. 더욱이 파송

교회와 선교사는 강한 관계를 맺고있다. 선교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파송선교단체보다 더 앞장 서 필요에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도 파송교회 이다.

 

(부연: 교단에서 선교사파송을 하는 미국에서는 한국교회의 선교사 파송이 새롭게 느껴짐) 

 

Baby Boomers Become “Silver” Missionaries

베이비붐 시대의 실버 선교사들

 

Finally, Koreans regularly send “silver” missionaries onto the mission field after they retire from their jobs. Korean baby boomers—

born between 1955 and 1963—make up nearly 15 percent of Korea’s total population of 71 million people.

Every year, about 1 million people retire. Among them are many faithful Christians, and many of them want to live a

second life after retirement by serving as missionaries.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은 정기적으로 "실버"선교사를 선교 현장에 파견합니다. 1955 년에서 1963 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한국의 총 인구 71백만 인구의 약 15 %를 차지합니다. 매년 약 백만 명이 은퇴합니다.

그들 중에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으며, 많은 이들이 선교사로 봉사함으로써 은퇴 한 후에 다시 선교사로 살기를 원합니다.

 

By God’s plan and providence, the Korean church has been able to engage vigorously in mission work over the past thirty years.

As a result, God has used Korea’s story of overcoming various hardships—severe poverty, lack of natural resources, dictatorship,

civil war, national bankruptcy—to spur missions activity among Christians worldwide.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한국 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선교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전세계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선교 활동을 촉발시키기 위해 심각한 빈곤, 천연자원 부족, 독재권력, 내전, 국가파산 등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한국의 이야기를 사용하셨습니다.

 

Our story is still fairly new, and it is likely we have many lessons to learn as we encounter secularization in our country and threats

from others. But I am confident that God will continue to accomplish great things through the Korean church as we fix our eyes on him.

 

우리의 이야기는 여전히 새롭고, 우리나라의 세속화와 다른 사람들의 위협을 통해 배울 교훈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에게 주목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한국교회를 통해 위대한 일을 성취 해 주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Jae Kyeong Lee is the president of the Foreign Baptist Mission Board (FMB) of the Korea Baptist Convention. He has been actively involved in missions since 1987 when he and his family moved to Fiji for mission work. He earned a DMin from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started his work with FMB in 2000 as general secretary, and was appointed president in 2005. Jae Kyeong Lee lives in Seoul, Korea.

 

글쓴이: 이재경은 침례교단의 외국인 침례교 선교위원회 (FMB)의 대표입니다. 그는 피지에서 가족과 함께 1987년 선교사역을 시작했으며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마치었고 2000FMB 사무총장으로 일하기 시작하여 2005년에 대표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재경은 서울에 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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